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앨버트 빅터 (문단 편집) == 사랑 이야기 == 청년으로 성장한 앨버트 빅터 왕자는 2번의 사랑을 하면서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 이쪽은 보수적이고 전형적인 [[시어머니]]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와 부모님[* [[에드워드 7세]]와 왕비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알렉산드라]] 부부. 성격 차이가 심해서 항상 서로 싸워서 사이가 좋지 못했다. 에드워드 7세가 자신의 정부인 [[앨리스 케펠]]과 노는 모습을 알렉산드라가 보고 욕을 했다고 한다.]이 출연한 [[막장 드라마]]에 본인도 출연신청을 했다. 첫사랑은 사촌인 [[헤센의 알릭스|헤센의 공녀 알릭스]]였다.[* 앨버트 빅터의 고모 [[앨리스 모드 메리]]의 4녀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알릭스 대공녀가 좀 더 자라 청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길 기다리는 동안''' 그의 평생에 오점이 되어버린 클리블랜드 스트릿 스캔들[* 상술한 미성년자 게이 매춘사건을 말한다.]이 터졌다. 그해 앨버트 빅터 왕자는 [[인도 제국]]으로 보내졌고 다시 돌아왔을 때 이미 알릭스는 앨버트 빅터의 이종사촌이자 [[조지 5세|남동생]]의 도플갱어로 유명했던 [[니콜라이 2세]]와 뜨겁게 연애 중이었기 때문에 앨버트 빅터의 청혼을 거절했다.[* 동생 [[조지 5세]]도 자기보다 10살 어린 사촌 [[마리 알렉산드라 빅토리아|에든버러의 마리]]에게 반해서, 그녀가 하루빨리 성장해서 청혼하길 기다리다가 어머니들간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스캔들의 대상이 되기 쉬워졌기에 서둘러 아내를 맞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앨버트 빅터 왕자는 여러 공주들을 생각했는데, 하필 가장 부적격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루이필리프]]의 손자이자 프랑스 왕위 계승요구자인 파리 백작 오를레앙의 필리프의 딸인 [[엘렌 도를레앙|오를레앙의 엘렌]]이었다.[* 즉, [[루이필리프]]의 증손녀.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어머니인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가 이 인물의 조카이다.(여동생 루이즈의 딸)] 엘렌은 프랑스 군주의 직계 후손이었던 만큼 통치 가문의 남자와 혼인할 수 있는 고결한 신분이었으며[* 실제로 엘렌의 언니 [[아멜리 도를레앙|아멜리]]는 [[포르투갈 왕국]] 국왕 [[카를루스 1세]]의 왕비였으며, 엘렌 역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와도 혼담이 오간 적이 있다.] 이전에 엘렌의 부친 필리프의 숙부와 고모 두 명이 영국 왕실의 친척과 결혼한 바가 있었기에 혼맥으로 어느 정도 이어진 사이였다.[* 필리프의 첫째 숙부인 루이는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동생인 빅토리아 공녀와 결혼했고, 첫째 고모인 [[오를레앙의 루이즈|루이즈]]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인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1세]]와, 넷째 고모인 [[클레망틴 도를레앙|클레망틴]]은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오빠인 아우구스트 공자(클레망틴의 올케인 빅토리아 공녀의 작은오빠이다)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프랑스인]]'''인데다가 '''[[가톨릭]]''' 신자였고 [[영국]]의 왕위 계승자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서는 안되었다.[* [[영국]] 왕족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면 계승권을 박탈당하는 법이 무려 '''[[2015년]]''' 3월 26일 전까지도 유효했다.([[개신교]]는 성공회 외라도 괜찮다. [[정교회]]는 이론상 괜찮으나 실제로는 대부분 결혼 전 성공회로 개종했다) 가령 1948년에 [[미하이 1세]]가 안 드 부르봉파르마와 결혼하였을 때 안이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이 법에 의해 영국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명된 일이 있었고, [[네덜란드]]의 [[빌럼알렉산더르]] 국왕도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막시마 소레기에타]] 왕비와 결혼했을 때 이 법 때문에 영국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 2015년 3월 26일부터는 반 [[살리카 법]]도 폐지되어 남녀 구분없이 절대적 맏이 계승으로 바뀌었으며, 가톨릭 신자와의 결혼으로 계승권을 박탈당하는 것도 사라졌다. 이 바뀐 법의 첫 수혜자는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케임브리지의 샬럿]]'''이다. 남동생 [[루이 아서 찰스]]가 태어났어도 왕위 계승 순위가 유지되었다.] 프랑스 공주가 영국의 왕비가 된 예는 [[찰스 1세]]의 왕비였던 [[앙리에트 마리|헨리에타 마리아]]가 있었지만 그 때 영국은 청교도 혁명이 일어났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다른 결혼 후보로 [[마르가레테 폰 프로이센|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 훗날 헤센-카셀 백작부인. [[빌헬름 2세]]의 막내 여동생이며 앨버트의 고종사촌이다.]를 추천했지만, 둘이 워낙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었기에 여왕에게 간청을 했고 결국 여왕은 그들의 결혼을 지원해주기로 결심한다. 앨버트 빅터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할 것을 제안했고 엘렌은 [[교황]] [[레오 13세]]에게 중재를 요청했지만, 교황은 가톨릭 외의 다른 기독교도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그녀의 아버지도 반대해서 결국 둘은 결혼하지 못하게 되었다. 앨버트와 헤어진 이후 오를레앙의 엘렌은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아오스타 공작가는 [[이탈리아 왕국]] [[사보이아 가문|사보이아 왕가]]의 방계 가문이며 초대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차남 [[아마데오 1세|아메데오 왕자]]를 시조로 하는 가문으로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2대 당주였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국군]] 육군 제3군 사령관이었던 최고위급 장교이기도 했다.]와 결혼해 아오스타 공작부인이 되어 두 아들을 낳았다. 오를레앙의 엘렌과 헤어진 후 레이디 시빌 얼스킨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신분이 낮았다. [[에드워드 7세]]는 자신의 스캔들로도 머리가 아팠기에 앨버트 빅터 왕자가 결혼하지 않는다면 멀리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신혼시절부터 남편의 외도로 골머리를 앓아 자녀들에 대한 독점욕이 어마어마했던 어머니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알렉산드라 공주]]는 아들을 다시 멀리 떼어놓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앨버트와 결혼할 적당한 여성을 찾기 시작했다.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예의바르며 온순하고 강한 책임감을 가진 [[테크의 메리]][* 테크의 메리의 아버지는 부계로는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직계 핏줄이나 모계로는 왕족이 아닌 [[귀천상혼]]이었기 때문에 테크 공작가로 분가한 가문의 수장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영국 공주임에도 어쨌든 부계 혈통은 귀천상혼으로 탄생한 가문이었기 때문에 유럽 대륙의 다른 왕가들은 동일하게 격이 떨어지는 귀천상혼으로 취급했지만, 영국에서는 자신들의 공주의 자녀였기 때문에 부계 혈통은 대륙에 비해 크게 쓰지 신경쓰지 않았고 덕분에 약혼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빅토리아 여왕]]이 테크의 메리를 가장 지지했던지라 아무도 여왕의 결정에 토를 달 수도 없었던 것도 있었다.]를 매우 이상적인 신부감으로 생각하여 적극 추천하였고, 앨버트 빅터는 여왕의 결정에 순응했다. 다만 평상시 친하게 지내던 [[바텐베르크의 공자 루트비히]]에게 보낸 편지에다가 [[정략결혼|"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아니다"]]라고 쓰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